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등의 기록에 의하면 태백천왕당(太白天王堂), 신사(神祠)라는 이름의 사당과 천제단이 있었다. 지금은 천제단 만 있고 사당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시대 이후 천왕당과 천제단은 여러 차례 수난을 겪는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예전 6조에는 ”김치(金緻 1577~1625)가 영동(경상)에 관찰사로 와서 태백산신사(太白山神祠)를 헐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보다 앞서 1530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보아도 그 이전에 이미 폐지 된 전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승려에 의해 훼손된 기록도 있다.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지낸 허목(許穆, 1595-1682)의 척주지(陟州誌)에는 ”우리 효종 8년(1657년)에 충학이란 중이 있어 태백산 천왕사를 불태우니 제사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대신 사찰을 세우고 문수보살상을 모셨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대종교인들이 천제단을 보수하였고, 1942년에는 천평마을 주민들이 허물어진 천제단을 다시 쌓고 대한독립기원제를 올렸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방치되어 자연적으로 허물어진 상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6·25 동란 중 미군이 헬기착륙장을 만들면서 태백산 천제단을 허물었는데 휴전 직후 봉화군 물야 초등학교 우성조 교장이 주민들과 함께 보수하였고 1990년 천제를 태백시에서 주관하기 전까지 이들이 태백산 천제를 지내왔다. 근래 2008년 모 종교 성직자에 의해 천제단이 훼손된적이 있으나 현재는 복원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