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구한 말 ~ 일제 강점기
구한말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자 여러 의병들과 동학, 대종교 등 민족종교를 신앙하는 애국지사들이 태백산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태백산에서 독립을 맹세하는 천제와 기도를 하였고 망국의 혼란 속에서 백성을 구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련하였다.
구한 말 태백산과 경북 울진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으로 여러 전공을 세운 최초의 평민의병장 신돌석(申乭石, 1878-1908)장군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거병(擧兵)에 앞서 태백산에 올라 백마(白馬)를 잡아 하늘에 제사하며 나라를 구할 것을 맹세하였다고 전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태백산과 동학과의 인연도 매우 깊다. 동학의 1대 교주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사형당하고 도망자가 된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은 태백산 자락에 피신하여 수도에 전념한다. 영월 중동면 직동리에서 49일 수련을 마친 그는 ’사람이 곧 하느님이니 사람을 하느님과 같이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을 태백산 일대에서 처음 설파하였다. 또한 1873년 태백산 갈래사(葛來寺)의 적조암(寂照庵)에서 49일 기도를 마쳤다는 기록도 보인다. 전라도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태백산 수련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인들이 태백산에 와서 천제단을 보수하였고,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는 태극교도들이 독립을 기원하는 천제를 지냈다.
1942년에는 태백산 남쪽 천평마을의 윤상명, 유형호, 이낙림, 유형남 등 주민 50여명이 허물어진 천제단을 다시 쌓고 대한독립기원제를 올렸는데 밀고자 최 모에 의해 이 중 20여명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러 그 중 몇 명은 옥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