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한제국(大韓帝國)시대
조선왕조실록의 원구단에 대한 기사 90여건 중 50건 이상이 고종실록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당시 조선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이자 명실상부한 황제국으로 거듭나려 부단히 애썼음을 말해준다.
1865년 예조판서 김병국(金炳國, 1825-1905)은 별자리에 지내는 천제를 복원하자고 건의한다.
“우리나라는 신라(新羅), 고려(高麗)시대부터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있었는데, 원구단의 제사는 지낼 수 없으나 성신(星辰)에 대해 제사를 지냈다는 근거는 매우 많이 있습니다.” 라고 했다.
삿된 음사로 폄하 받던 태백산 천제의 명예회복도 고종 때 이루어진다.
1884년 유생 김상봉(金商鳳)은 “명산대천(名山大川)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옛날 임금들도 다 행했던 것입니다. 백두산(白頭山), 금강산(金剛山), 지리산(智異山), 태백산(太白山), 계룡산(鷄龍山)은 나라를 수호하는 명산이니 지성으로 기도하면 나라의 명맥과 운수를 길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상소를 올린다. 이전과 확연히 다른 점은 신하들도 더 이상 유교의 예법(禮法)을 들어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왕도 잘 알았으니 그리하라 명한다는 점이다.
1895년 마침내 고종은 황제의 천단인 원구단(圜丘壇)을 세우라고 명한다. 조선은 제후국에서 황제국으로 거듭나려 하였고 그 상징은 원구단에서 황제가 친히 행하는 천제(天祭)였던 것이다. 1897년 10월 고종은 왕이 아닌 황제의 자격으로 덕수궁 옆에 신축한 원구단에 나아가 천제를 지내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을 만방에 선포한다. 하지만 고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이 일본에게 한국을 통치하는 것을 묵인해준 이후(가쓰라-태프트 밀약, 영일동맹), 대한제국의 몰락은 거침없이 진행된다.
일제는 먼저 자주독립국이자 황제국과 천손(天孫)의 상징인 천제의 흔적을 지운다. 1911년 황제의 천제단인 원구단을 인계받은 조선총독부는 1913년에 원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짓는다. 덕수궁 옆, 원구단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웨스턴 조선호텔이 서 있고, 호텔 경내에 원구단의 부속건물인 황궁우(皇穹宇)만이 이곳에서 황제가 천제를 지냈노라 말없이 전하고 있다.